<안심소득의 허구성>
오세훈 서울시장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전 당대표의 기본소득 정책에 대해 ‘궤변 중에 백미’라며 ‘세금조차 내기 어려울 정도로 어려운 분을 더 도와야 되는 것이 세상의 상식 아니냐’고 말했다. 이어서 ‘정책 우수성이나 효과성, 가성비 등을 따지면 기본소득은 안심소득에 범접할 수조차 없다’고 덧붙였다. ‘한 번 기초수급자가 되면 평생 거기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기존 제도에 비해 안심소득이 얼마나 상대적으로 장점이 많은지 백일하에 드러날 것이라 확신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진짜 선수들끼리는 상대를 존중해주고 예의를 지켜주는 소위 ‘페어플레이’라는 것이 있다. 자신의 정책이 비교우위에 있다고 한다면 그것의 장점만 부각시키면 된다. 굳이 상대방 정책을 ‘궤변 중에 백미’라는 식으로 폄훼한다고 해서 자신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기왕 말이 나온 김에 오세훈의 안심소득이 기본소득에 비해 정책 우수성이나 효과성, 가성비에서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고 하니 한번 따져 보기로 하자.
첫째, ‘정책의 허구성’이다. 오세훈의 안심소득은 경제적 취약계층을 위한 복지정책이라는 미명 아래 알맹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전형적인 사탕발림식 전시 행정의 표본이다. 서울시민들을 농락하는 허구적인 정책이다. 안심소득은 저소득층에게 지원하는 현금성 복지제도이다. 하지만 현금성 복지제도를 이미 받고 있는 생계급여, 주거급여, 기초연금, 기초생활보장 대상자들은 선정 대상에서 아예 제외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소득이 가장 낮은 사람들은 이미 현금복지를 받고 있다는 이유로 안심소득을 받을 자격조차 없는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안심소득은 저소득층의 빈곤 해소와는 한참 거리가 먼 ‘한심소득’인 것이다.
둘째, 아주 못된 ‘시혜성 정책’이다. 안심소득의 가장 큰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기준 중위소득 50% 이하인 가구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이다. 2024년 통계청 발표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 1인 가구 월 중위소득은 207.8만 원으로 도시 근로자 1인 가구 월 평균소득 335.4만 원과 비교해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이는 중위소득보다는 높지만 평균소득보다는 낮은 가구가 매우 많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중위소득을 기준으로 삼다 보니 평균소득에도 못미치는 많은 사람들이 아예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최종적으로 안심소득을 받기 위해서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자신이 가난하다는 증명을 몇 차례에 걸쳐 서류와 증빙자료로 입증해야 마침내 최종 선정이 될 수 있다. 일종의 ‘가난 확인서’를 내야 비로소 ‘선심소득’을 받는 영광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더 어려운 처지인데도 선정과정에서 탈락한 가구들은 두 번 눈물을 흘려야 한다. 가난해서 한번, 운 나쁘게 탈락해서 또 한 번 분루를 삼켜야 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가혹하고 잔인한 정책인가.
셋째, 안심소득은 ‘속 빈 강정 정책’이다. ‘소문난 잔칫집에 먹을 것 없다’는 말이 그냥 있는 것이 아니다. 일단 기준 중위소득의 50% 이하에 포함되어 지급 대상자가 되었다 하더라도 추가로 까다로운 조건이 붙는다. 지급액이 ‘기준 중위소득 85% 대비 가구소득 부족분의 50%’라는 조건이다. 가령 1인 가구 기준 중위소득이 200만 원이고 실소득이 100만 원이라면, 85%인 170만 원 대비 차액 70만 원의 50%인 35만 원을 안심소득으로 받게 된다. 만일 무소득자라면 170만 원의 50%인 85만 원을 지급받는다. 실소득이 100만 원이라는 이유로 전혀 소득이 없는 대상자보다 50만 원이 깎인다. 게다가 안심소득을 서울시 전체로 확대할 경우 약 17조 원의 재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되는데, 그럴 바에 차라리 이를 기본소득으로 지급하면 서울시민 1인당 연간 170만 원, 4인 가족 기준 680만 원씩 지급이 가능하다.
넷째, 안심소득은 ‘갈라치기 정책’이다. 안심소득은 서울시민을 등급별로 갈라치기하는 아주 나쁜 정책이다. 기준 중위소득의 50%를 경계선으로 서울시민의 70% 이상을 제외시킨 다음, 2024년의 경우 평균 몇십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최종적으로는 겨우 492가구에게만 선심 쓰듯이 지급하는 것이 과연 시장으로서 해야 할 일인가? 실제로 안심소득 대상 가구는 수만 가구에 달한다. 그런데 그중에서 고작 492가구만 고른다. 그것도 ‘제비뽑기식’으로 선정한다. 그러다 보니 진짜 필요한 가구는 거의 탈락하고, 덜 필요한 가구가 선정되는 역차별이 자동적으로 발생한다. 매우 불공정하고 매우 불평등하다. 이 정책이 계속 시행될 경우 실제로 혜택을 받아야 할 상당수 가구들이 처음부터 신청 자체를 포기해버리는 ‘절망효과’와 가난을 수시로 입증해야 하는 ‘낙인효과’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 선별이 지니는 치명적인 차별이다.
다섯째, ‘시대착오적인 복지정책’이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안심소득의 이론적 배경은 1960년대에 시카고대학교 밀턴 프리드먼이 제안했던 ‘마이너스 소득세’(negative income tax, 일명 부의 소득세 또는 음의 소득세)다.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 경제학자이며 <맨큐의 경제학>으로 유명한 하버드대학교 경제학과 그레고리 맨큐 교수는 수십 년 전 자신이 대학생이었을 때 이 아이디어를 소개한 프리드먼의 책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보수의 아이콘이라고 일컫는 맨큐가 선별적 지원보다는 전 국민에게 보편적 지원을 하는 것이 더 낫다고 말했다면 뭐라고 반박하겠는가? 보수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대상을 선별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야기되는 부작용과 낭비를 줄일 수 있는 ‘보편적 기본소득’을 높이 평가한 것 아니겠는가?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의 오세훈표 안심소득은 시대착오적인 선별적 복지정책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우리 사회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경제·사회적 불평등과 불확실성으로 인해 엄청난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본격적인 4차산업혁명 여파에 따른 빈부격차의 심화, 기후 변화에 따른 자연재해와 환경 재앙의 시대를 살아가야 한다. 여기에는 누구도 예외가 없다. 이제는 생존권과 기본권 차원에서 대다수 시민을 위한 ‘기본소득 보장정책’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 그렇다면 미래 대한민국 사회에서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시혜’나 ‘자선’이 아니라 마땅히 받아야 할 ‘권리’로서 전 국민에게 지급하는 ‘기본소득’보다 더 실용적인 정책 대안이 또 있을까? 예측하건대 오세훈의 안심소득은 역설적이게도 기본소득의 당위성과 우월성만 더 부각시켜주는 결과를 빚게 될 것이다.
무릇 큰 정치를 하려고 하는 사람은 자신이 어떤 정치철학을 가지고 있고, 그 철학을 어떤 정책으로 구현할 것이며, 그 정책을 유권자들에게 어떻게 잘 전달할 것인지 항상 성찰하고 숙고해야 한다. 단지 표를 얻기 위해 보여주기식 선심성 공약을 내세우거나 포장만 그럴듯한 위장성 공약으로 매표행위를 하려는 정치인은 얼마 못 가서 본색이 드러나고 씁쓸하게 사라진다. 오늘날 우리 국민은 중산층과 서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참된 정치를 구현할 비전을 가진 시대를 앞서가는 정치가를 절실히 원하고 있다.
- 정균승 (군산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 -